어떻게 그럴수 있을까?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결정을 내린다면, 그러면 그 결정의 기준은 무엇이어야 한단 말인가?
요즘 내가 이렇게 힘든 이유가 결과에 너무 집착한 변화를 꿈꾸기 때문에 그런건 아닐까?
사실이다.
나에게 있어서 나이를 먹는다는것 그건 예전보다 좀 더 신중한 결정을 하게된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전에는 현재 이것이 아니다 싶으면 바로 바꿀 수 있는 결단력이 있었는데 이제는 자꾸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뭔가 확실한 안정이 보장되지 않거나 확실한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한 현재에 안주하면서 변화를 꾀하려는 생각이 강하다.
물론 장단점이 있을것이다. 하지만 중요한건 현실에 안주하면서는 변화를 이루기 힘들다는 것이다. 현실에 안주하면서 이룬 변화는 내가 주체적으로 변화를 만들어가면서 이룬것이 아니라 다른 어떤 영향에 의해서 단지 변화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변화는 결국 후회를 낳기 마련이고 또 결과에 스스로 책임지지 못하고 잘 못됬을 경우에 남의 핑계를 대기 마련이다.
지금은 내 인생에 있어서 다시한번 변화를 꾀할 시기이다. 이력서에 메꿀 무언가를 저질러야 하는데 이렇게 현실이 주는 달콤함에 너무 중독되 버린건 아닌지. 그런면에서
안철수
는 정말 대단하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하는 그가 존경스럽다. 대한민국에서 저만큼 적이 없이 고루 존경받는 CEO도 없을것이다. 역시 뭐라해도 세상에서 제일 강한건 칼보다는 펜이라 확신한다.
안철수에 대한 글이나 그가 직접 쓴 글을 보면서 한가지 궁금한게 생긴다. 외부적으로 비쳐지는 그런 이미지 말고 그와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나 가족들도 그에 대한 존경심이 그렇게 대단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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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re=" 기사전문보기 ">[IT리더들 희망은 불황보다 강하다] 2. "안철수"의 고집
"남이 안 가는 길 가야 내 삶"
컴퓨터에 청진기 댄 '의사 지망생'
누구나 일생에 한번은 두 갈래 길에서 고민한다.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가지않은 길'에서 노래했듯이.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
1994년, 서른두살의 안철수(현 안철수연구소 사장.사진)도 선택의 기로에 섰다. 의사가 될 것인가, 컴퓨터 바이러스 퇴치의 길을 걸을 것인가. 20대에 의학박사와 의대교수에 오른 그가 의사의 길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주변의 예상을 깨고 남들이 가지 않은 불모지를 골랐다. "사람 고치는 의사는 많지만 컴퓨터의 건강을 책임질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가 던진 성공의 메시지는 '남들이 안가는 길을 개척하라'이다.
#안정보다 모험을 택했다
안철수는 독서광이다. 본인은 이를 '활자광'이라고 표현한다. 책의 발행 연월일까지, 활자화된 것은 모조리 읽는다. 부산 동성초등학교 때 '파브르 곤충기'에 빠졌다. 등교하면서 길에서 읽었다. 그는 목욕과 이발을 제일 싫어한다. 그 때는 다른 일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욕은 집에서만 한다. 목욕 중에 책을 보기 위해서다. 그는 "책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 의대 박사과정 시절인 88년부터 향후 진로를 놓고 고민했다. "세운상가에서 외국 잡지에 게재된 컴퓨터 바이러스 기사를 읽었다. 그날 밤, '혹시 내 컴퓨터에는 바이러스가 없을까'라는 호기심이 났다. 찬찬히 살펴보니 웬걸, 바이러스가 창궐해 있었다." 호기심에 오기가 더해져 밤새 머리를 싸맸다. 컴퓨터 바이러스가 복사 프로그램과 비슷하다는 원리를 그때 처음 알았다. 며칠 뒤 의대 후배가 찾아와 "우리나라에는 컴퓨터 바이러스를 치료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후배에게 간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래, 말로써 설명이 가능하다면 퇴치 프로그램을 못 만들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그는 결국 퇴치 프로그램을 만든 뒤 마이크로소프트웨어라는 잡지에 기고했다. 그걸로 손을 털었다. 다 잊어버리고 의학 공부에 몰두했다. 하지만 사단이 벌어졌다. 기고를 한 잡지사에 프로그램 문의가 쇄도했고 잡지사가 안철수에게 도움을 청했다. "황당하더군요. 독자 문의에 일일이 답변해야 한다니…." 그러나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구나'. 문제는 시간이었다. 의학 서적과 씨름하기도 버거운데…. 결국 새벽 3시부터 세 시간을 할애해 답변서를 썼다.
"서울 청량리에 살 때였어요. 비몽사몽간에 바이러스와 싸우다 보면 어느새 먼동이 텄습니다. 몸 데우느라 타놓은 커피는 싸늘히 식고…."
94년 군의관 복무를 마친 뒤 정말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만 했다. "의대 공부가 어려워 다른 길을 택했다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졸업할 때 160명 중 10등 안에 들었다. 그러나 나는 컴퓨터를 선택했다. '안정'보다는 '모험'을 고른 것이다."
#세속적인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다.
안철수는 결단의 순간에 그 결단의 결과를 예단하지 않는다. 또 명예.돈.평판을 고려요소에서 빼버린다. "사람이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운 이유는 결과를 미리 생각하기 때문이고 그것은 결단의 본질을 흐려놓는다."
97년 그를 유혹하는 일이 벌어졌다. 설립한지 2년밖에 안된 회사를 사겠다는 제의가 들어온 것. 미국의 한 보안업체는 1000만달러를 제시했다. 이 업체는 이미 일본 업체를 사들이고 한국 공략에 나선 때였다(현재 일본에는 토종 보안업체가 없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노"였다. "어쩌면 평생 만져보지 못할 돈이다. 하지만 내가 개척한 길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면서 손을 내저었다.
프로스트는 이렇게 이어갔다.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이다 /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시인은 가지 않은 길로 갔더라면 인생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안철수는 의사를 포기한 것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 지금의 길을 더 힘차게 걷고 있다. 그는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네 /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노래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정선구 기자
◆ 안철수씨는=1962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책을 너무 좋아해 부산고 시절 갖고 다니기 좋고 수업시간에 읽기 쉬운 삼중당문고 400권을 거의 읽었다. 무엇을 하기 전에 책을 반드시 읽는다. 바둑도 어깨너머로 배우기 전에 수십권의 바둑책을 읽어 외어버렸다. 아마추어 2단 실력이다. 80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하고 단국대 의예과 학과장까지 지냈다. 95년 서울 서초동에서 3명의 인원으로 회사를 차렸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미 와튼스쿨에서 기술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2002년 미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 선정 '2002 아시아스타 25인'에 들기도 했다. 안철수연구소는 지난해 277억원의 매출에 41억원의 순익을 냈다.
2004.09.09 18:22 입력 / 2004.11.12 15:4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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